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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15

150726 시간이 흐른다는 것


 1933년에 태어나신 우리 할머니는 1남 3녀집안의 둘째 딸이시다. 언니 한 명과 아래엔 남동생 여동생 한 명씩. 함경도가 고향이시고, 6.25때 남쪽으로 오셔서 할아버지를 만나 지금까지 살아오셨다. 내 기억에 할아버지와는 행복한 노년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시지도, 생활하시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자녀와 손자들 덕분에 썩 보람 있는 삶이 아니셨을까. 올해로 여든 셋이신 우리 할머니. 첫째 아들인 우리 아버지와 함께, 내가 태어났을 때 부터 나와 함께 생활해 오셨다. 2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까지 다섯 식구가 함께. 네 개이던 시절도 있었지만, 우리 집의 방은 대체로 세 개였고 하나는 엄마 아버지, 그리고 하나는 할아버지, 남은 한 방이 할머니와 내가 쓰는 방이었다. 대학때 자취 및 기숙사 생활을 하던 약 1년과 군대 2년을 제외하면,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와 같은 방을 쓴 것이다. 불편하긴 해도 싫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 없었고, 할머니가 생활하시기에 불편하시지만 않았으면 했다. 부작용도 있다. 어릴 때에는 혼자 잠을 못잔 것. 하여, 할머니가 여행이라도 가신 날에는 낮부터 잠과의 싸움인 것이다. 낮에 졸리다고 잠이라도 자 버리면, 밤에 잠을 못 자니까. 가뜩이나 혼자 자기 무서운데.


 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좋은 추억은 물론이지만, 인생의 후반부가 되면 어느새 슬퍼할 일이 많아지기만 하는 것 같다. 어느새 여든 셋의 삶을 살아오신 우리 할머니. 죄송한 말씀임에도 불구하고, 이제 정확한 연도도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. 약 7년 전, 둘째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셨다. 갑작스런 병으로. 그리고 건강하던 아들을 잃은 마음이 보듬어질 새도 없이 딸의 암 진단을 전해받으셨다. 내 큰고모. 맞벌이로 엄마 없이 자라는 내게 엄마 같았던 큰고모. 고모는 약 2년의 투병을 거쳐 돌아가셨다. 할머니는 그렇게 자식 둘을 잃었다. 그리고 그 다음 해.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. 할아버지도 암 진단을 받으셨으나, 이미 고령이신 할아버지는 항암 치료를 거부하셨다. 사이가 좋지 않으셨던 할머니도,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목놓아 우셨다. 그게 2년 전. 그리고 올 해 초. 할머니의 남동생-내게 삼촌 할아버지-이 돌아가셨다. 할머니와는 10년 이상 차이나는 동생이시고, 평소에 워낙 건강하셨던 분이기에, 삼촌 할아버지의 소식은 우리 집안 식구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. 할머니는 또 그렇게 슬픔을 받아들였다.


 그리고 오늘. 할머니의 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할머니께 전해졌다. 언니-내겐 큰 할머니-분은 하와이에 머물고 계신 재미교포신데, 사실 엄마와 아버지께는 이 소식이 먼저 전해졌다. 할머니께 하나 남은 동생 분이 하와이에 가서 그 소식을 전해들으셨기에. 헌데, 우리가 직접 전해드리면 그 충격을 감당하시기 어려울 것 같아 우리는 함구할 뿐이었다. 그리고 오늘, 동생이 와서 그 소식을 전했다. 나는 살며시 문을 닫고 있었는데, 그 슬픔이 다 전달된 기분이었다. 당연히, 당연히 이제 할머니께는 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많아야 하는 시기일까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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